성민우  SUNG, Min Woo

작가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 성민우는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미술교육학을 공부하였다.

2003년 첫 번째 개인전 「나무」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5회의 개인전과 120여회의 기획,단체전에 참여하였다.

비단을 바탕재로 하여 전통적인 이금기법을 변용한 채색기법으로 풀을 그린다.

자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어느 날 주변에 흔하게 자라는 일년생 풀들로 옮겨진 뒤 풀은 가장 좋은 작품의 소재이자 동지가 되었다.

풀을 통해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고 삶의 방식과 태도를 결정지으면서 풀로 사람을 그려내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개인전 15(서울, 대전, 진주, 뉴욕, 파리)

2017 Oikos (KSD갤러리, 서울)

2016 Oikos (갤러리그림손, 서울)

2015 Ecology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법원갤러리,진주)

2015 Ecology (Gallery bdmc,파리)

2014 관계의 생태 (ablefineartNYgallery,서울)

2014 草像 (모리스갤러리,대전)

2013 Portrait (ablefineartNYgallery,뉴욕)

2012 일년생 (갤러리이즈:서울, 모리스갤러리:대전)

2012 풀의 정원 (화봉갤러리,서울)

2010 가벼운 사랑 (팝아트팩토리,서울)

2009 (목인갤러리,서울)

2007 흔한풀 (노암갤러리,서울)

2005 풀의 초상 (대학로 21C 갤러리,대전)

2005 금빛풍경 (관훈갤러리,서울)

2003 나무 (노암갤러리,서울)

 

아트페어

베이징아트페어(CIGE), 상하이아트페어, 뉴욕AAF, 런던배터시AAF, 중국서안국제아트페어, 대구아트페어, 아트쇼부산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정부미술은행, 주한이집트대사관, 한국가스기술공사, 단원미술관, 한국수자원공사, 개인소장

 

작가소개 동영상

http://youtu.be/ehYq2zlw3kw

 

contact: lucid0207@hanmail.net

 






SUNG, Min Woo



Artist SUNG, Min Woo studied Oriental Painting at Hongik University and Art Education at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SUNG, Min Woo has held 15 solo exhibitions since the first solo exhibition in 2003 and participated in more than 120 planning and group exhibitions.

The silk has been used as a base material, and the grasses have been painted by changing the traditional pigment method using golden powders.

After a continuous interest in nature was transferred to one-year-old grasses that grew up around anywhere, the grasses have become the best object and comrade.

SUNG, Min Woo does not hesitate to draw people using the grasses with understanding the nature of life and determining the way of life and attitude through themselves.


Education

 PhD, Dept. of Art Education,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MFA, Dept. of Oriental Painting, Hong-Ik University

 BFA, Dept. of Oriental Painting, Hong-Ik University

 

Solo Exhibitions (Seoul, Daejeon, Jin-ju, NewYork, Paris)

2017  "Oikos" (KSD Gallery, Seoul)

2016  "Oikos" (Gallery Grimson, Seoul)

2015    "Ecology" (Jin-Ju Scourt Gallery, Jin-ju)

2015    "Ecology" (Gallery BDMC, Paris)

2014    "Ecology of Relation" (AblefineartNYGallery, Seoul)

2014    "Portrait" (Morris Gallery, Daejeon)

2013    "Portrait" (AblefineartNYGallery, NewYork)

2012    "Annual" (Gallery IS, Seoul; Morris Gallery, Deajeon)

2012    "Grass Garden" (Hwabong Gallery, Seoul)

2010    "The Love of Life Lightly" (Pop Art Factory, Seoul)

2009    "Grass" (Mokin Gallery, Seoul)

2007    "Grass Met with Everywhere" (Noam Gallery, Seoul)

2005    "Grass Portrait" (DaeHakro 21C Gallery, Daejeon)

2005    "Golden Landscape" (Kwan-hoon Gallery, Seoul)

2003    "Tree" (Noam Gallery, Seoul)

 

 

Poession of Artwork

MMCA Art Bank, Korean Art Bank, Egypt Embassy of Korea, Korea Gas Technology Corporation, Danwon Art Museum, Korea Water Resources Corporation, Private Collection





생성하는 오이코스

 

허나영(미술비평)

 

아침에 일어나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하루를 보낸 후 잠이 들 때 까지, 우리는 수없는 ‘관계’ 속을 지난다.

나와 가족 간의 관계나 사회 속의 관계 뿐 아니라, 출근 버스 안에서 옷깃을 스친 사람이나 눈인사를 주고받는 행인과도 관계라는 그물로 연결되어 있다.

비단 사람만 그럴까? 현관문이 열릴 때 맡은 알싸한 바람, 흔들리는 가로수의 잎사귀 그리고 힘겹게 보도블록 사이를 비집고 나온 풀과도 마주친다.

그저 가을의 단풍에 감상이 젖어서 일수도 있지만, 종교나 과학의 관점에서도 우리는 관계망 속 한 점이다. 성민우의 풀들 역시 화폭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생태

성민우는 풀과 인간을 ‘관계의 생태’로 묶는다. 인간 간의 관계가 있듯, 풀들도 서로를 의지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마치 핏줄과도 같은 잎맥으로 작품 속에서 표현된다.

그저 한 존재만은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야만 하는 관계로 이루어지는 생태이다.

인간이 온전히 혼자일 수 없듯이, 풀들 역시 척박한 땅에서 움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서로 의지해야 할지 모른다.

이러한 생태의 무리를 성민우는 오이코스라 이름 붙였다.


오이코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공적인 영역인 폴리스에 대비되는 개인적인 집단을 지칭하던 말이다.

이후 이 단어는 주로 종교적인 무리를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성민우가 말하는 오이코스는 비록 피를 나누거나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도 서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의지하는 풀 무리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 풀 무리는 인간의 무리를 의미하기도 하다.

아이가 어미에게 의지하듯, 그리고 친구와 모여 수다를 떨 듯 인간은 친밀하고도 내 인생을 걸만한 인간 무리를 갖고 있다.

이런 모습은 척박한 아스팔트 한 귀퉁이,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비좁은 공간에서 풀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자라나는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그렇게 성민우에게 풀은 한낱 미물이 아니라, 무리를 이루는 생명이다.

 

시(時)와 공(空)

다시 말해 이 작품 속 풀들은 일반적인 선입견 속 풀이 아니다. 그렇다고 거창한 민중이나 인간의 실존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거대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우리가 하찮게 무시해버릴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화폭의 풀들은 저마다의 특성을 드러내며 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난다.

그리고 풀은 그 하나로 생명이기도 하고 서로 모여 생명의 그물을 만들어나가는 오이코스 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민우는 풀의 오이코스에 시간과 공간을 부여했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마무리하는 겨울의 전시에 걸린 풀들은 같은 해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의 풀들이다.

숱한 풀을 그리고 그 이름과 생태를 줄줄 읊을 정도로 준전문가이지만, 성민우는 절대 풀의 형태를 외워서 그리지 않는다.

오가면서 보게 되는 풀들을 직접 모아서 그 시간을 살고 있는 풀을 그리는 것이다.

오이코스-시(時)> 속 달맞이는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 돌보는 이가 없어 물이 부족해서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부족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 힘든 시간을 꿋꿋이 버텨낸 것이 더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달맞이는 성민우의 작품 속에서 금빛을 발하여 굳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오직 그림을 그리는 동안 생명이 존재하는 풀들을 그 시간 속에서 담아낸다.

그저 멈춰있는 것이 아니다. 흡사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같은 <오이코스-시(時)> 속 달과 해는 화면의 양쪽에 놓여 오이코스 속 시간을 대변해준다.


또한 오이코스는 공간을 이루기도 한다. 가족을 ‘집’이라는 공간으로 표현하듯, 풀들 역시 자신의 공간을 가진다.

하지만 그 공간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장소이다.

우리의 발 바로 아래이기도 하고, 폐가의 한 귀퉁이이기도 하며 고속도로변 척박한 땅뙈기이기도 하다.

오이코스-공(空)> 속 붉은 줄기의 환삼덩굴은 귀화식물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있지만 그 질긴 생명력 때문에, 그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자라기 힘든 땅에서 그 뿌리를 내린다.

그 생명력을 성민우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줄기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해내었다.

그리고 함께 공간을 메우는 메꽃, 달맞이꽃, 쇠무릎, 고들빼기, 달개비 등의 풀들은 저 멀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이러한 오이코스의 시간과 공간은 풀들이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에게 주어진 것과 똑같이 말이다.

이렇듯 성민우는 풀에게서 인간의 모습을 본다.

삶의 시기에 따라 힘들기도 하고 평안하기도 하며, 그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무리에서 떨쳐 내버리기도 하는 우리의 인생과 사회의 모습을 말이다.

작가는 풀들이 저마다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자신의 생명을 이어나가듯, 인간 역시 저마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 그 누구를 짓밟거나 폄하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생성하는 오이코스...

풀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그 누구보다 끈끈한 소통을 하게하고, 작가가 화폭에서 풀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듯이 풀 역시 화폭에서 자신의 오이코스를 이뤄달라고 작가에게 요구하는 듯하다.

그렇게 동산이 만들어지고, 숲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 성민우의 오이코스는 진행 중이다.


겨울이 오고 풀들이 저마다 자신의 뿌리를 땅 속에 감춘 채 다음 봄 햇살을 위해 생명력을 응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생명은 다시 땅 위로 올라와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씨를 뿌릴 것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생명을 가진 풀의 생태처럼 성민우의 오이코스는 계속 변화해나갈 것이다.

첫 오이코스는 붉은 생명의 혈관을 가진 풀들이었지만, 점차 오이코스들은 풀 본연의 색을 가지며 금빛 선으로 포개어졌다.

그리고 이제 작가는 그 풀들의 단단함을 보여주기 위하여 금박을 입힌다. 금박이 주는 단단한 금속성의 면은 남겨진 잎맥과 줄기를 강조하게 된다.

금빛 선으로 표현된 잎에서 주는 풀들의 개별성은 사라지고 그 생명이 흐르는 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새로운 표현적 시도를 통해, 성민우가 만들어낸 오이코스가 완성된 하나의 세계가 아니며, 생성 중인 다양한 세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붉은 힘줄이 밀집되어 에너지가 응집된 풀의 오이코스이기도 하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잔잔한 세계이기도 하며, 해와 달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있기도 하다.

또한 벌레와 어우러져있는 동산이 되기도 풀의 잎맥이 단단한 금속면과 부딪히며 만드는 숲이기도 하다.

이렇듯 성민우의 오이코스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그 다음을 또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오이코스 속에서 어쩌면 길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든다.

아름답게 분장된 풀들이 다음 오이코스에서는 어떠한 모습일지 기대와 걱정이 함께 드는 건, 아마도 우리의 인생 역시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 놓여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의 오이코스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설렘을 가지듯 다음의 오이코스를 기다려보면 어떨까.

 


 Creating Oikos

 

Art Critic, HUR Nayoung

 

I go through a lot of “relationships” from waking up in the morning with seeing the sunlight to falling asleep after whole day. I am connected by nets of relationships not only with my family and society but also with any passenger to meet in the commute bus. Is it only for human being? I sometimes faced with piquant winds as front door opening, leaves of shaky trees, and grasses between paving blocks. I can know to be a point in the relationship network on the viewpoints of religion or science. SUNG Min Woo’s grasses have faced with each other on her canvas.

 

Ecology

SUNG Min Woo binds grasses and human beings with “relationship ecology.” The grass relies on each other like human being. The relationship appears in her works with leaf vein like human. Because one being is hard to sustain its life, they should be closely related for themselves. As humans cannot be totally alone, the grasses should rely on each other to survive for themselves in the harsh land. SUNG Min Woo called this ecological herd “Oikos.”

The oikos refers to an individual group in contrast to the public domain, the Polis, in ancient Greece. Since then, the word has become a name primarily referring to religious herds. The “Oikos,” SUNG Min Woo saying, is a grass herd to survive the grasses each other with emotionally connecting by themselves even they have individual lives. As the child relies on her mother and the friends are gathering and chatting, the human beings have kept their herds friendly and valuable to bet their lives. They look like the grasses to keep their lives together in any cramped space or on a corner of stark asphalt. The gasses are not worthless organisms, but herds to keep their lives for her.

 

Time & Space

 


The grasses in her works are not the usual grasses. However, they do not represent a great people or a human existence. It is not a tremendous story, but it is also not something we can ignore. The grasses in her canvas shine brilliantly golden light with their characteristics. The grass can be a life by itself and an oikos by creating life network together. Therefore SUNG Min Woo gave the time and the space to the grass oikos.

Itis at the end of this year, winter of 2016. The grasses in her works come from the spring, summer, and fall of this year. She does not never draw the grass in her memory even she is one of semi-specialists of the grasses. She has collected and drawn the grasses within near her space, which have been living the time. The dal-ma-ji in the “Oikos-time” could not blossom with lack of rains in this especially hot summer. It is not lacking in appearance, but surprising to survive during this hot summer. The dal-ma-ji shines the golden light and keeps its position in her works. The time has been kept with the lives of the grasses during drawing this work. The sun and moon in the left and right of “Oikos-time” like il-wol-o-ag-do have represented the time of the oikos.

The oikos can be a space. The grasses have their own spaces like the family expressed as “house” space. The oikos space is a place we have not thought of yet: below my foot; any corner of deserted houses; stark and small land by streets. The hwan-sam-deong-gul in the “Oikos-space” is one of the most notorious naturalized plants. Therefore it just takes its roots off the hard-to-grow ground where people cannot reach with its strong vitality. The vitality has been shown as a figure of alive stems by SUNG Min Woo. There are many grasses in the space and they made their own world looking away from the blue sky, who are me-kkoch, dal-ma-ji-kkoch, soe-mu-leup, go-deul-ppae-gi, dal-gae-bi, etc. The oikos time and space show that the grasses have life. SUNG Min Woo sees the human figures from the grasses in this way: it is hard and peaceful according to the time of life; it is to throw someone away from the herd because it is just different. She has a question why don’t human beings live without trampling or disparaging anyone according to their own circumstances, like the grasses live their lives according to their given circumstances.

 


 

and Creating Oikos

Artist's affection for the grasses is to make communication between the artist and the grasses. It seems that the grasses are asking the artist to make their oikos in her works like the artist gives new lives to the grasses. With this way the garden was created and the forest was created also. However, SUNG Min Woo’s oikos is on-going now.

Winter is coming and the grasses are concentrating their vitality hiding their roots in the ground until next spring with warm shining. These lives will come up again on the earth, with leaves, flowers, and seeds. SUNG Min Woo’s oikos will be continuously moved like the ecology of the grasses with endless their lives. Her first oikos is the herd of grasses with red vein for their lives. The next is for the grasses to have their own colors and golden light. And then, the strength of the grasses is enhanced with covering by gold foils. The gold foil covered leaf side except its vein and stem. However, the metal characteristics of gold foils can enhance the leaf veins and stems. Through this new approach I can see SUNG Min Woo’s activities and know that now is not the completion of her oikos, one of her intermediates created by herself.

SUNG Min Woo’s oikos can be the grass oikos with energy-concentrated red veins, the peaceful world looking at the blue sky, the inside of time with the sun and moon, the garden with a worm, or the forest made of the leaves faced with metal surface. I expect to see SUNG Min Woo’s next works because her works are on-going and progressive now. But sometimes I have feeling with worries of what I stay in the oikos and lose the way further. What I have expectation and worry to see the grasses in her oikos is that life of human being is located on the uncertainty by herself. Why don’t you have a waiting for the next her oikos like exciting in the future coming soon?






바닥에서 빛나는 풀, 그리고 삶

허나영

 

나에게 있어 풀은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그들의 방식을 이해하고 싶고

그들을 연민하고

그들을 담고 싶은

그런 대상이었다.

-작가 노트 중-

 

어둠 속에서 자란 풀

검은 바탕 속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풀. 그리고 풀로 만들어진 형상과 풍경. 그 어두운 단순성과 강렬한 복잡성의 대비는 우리를 화폭으로 끌어당긴다. 이 어둠 속에서 피어난 형상은 무얼까.

이 장소는 어디일까. 화폭으로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모호한 공간 속에 들어가게 된다.

힘차게 꿈틀거리는 붉은 곡선들과 초록, 노랑의 형형색색의 선들은 그림 속 형상이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형상은 풀이다. 우리가 길가에서 매일 마주하는 풀 말이다.


길가 아스팔트를 뚫고 연석 사이를 비집고 나와 존재를 드러내는 풀, 소위 잡초라 불리는 이 풀들은 일상에서는 우리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간혹 민들레가 홀씨를 머금을 때가 궁금증이 잠시 스칠까?

이 내세울 만한 꽃도 향기도 없는 이 풀들을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누구도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 움터 싹으로 줄기로 잎으로 자라난다.

그저 자신에게 간간히 주어지는 빗방울과 흙의 온기만으로 말이다.

그리곤 일 년도 채 나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돕는 이 없어도 스스로 생명을 움트는 풀의 자생력.

그러한 풀의 생태를 성민우는 검은 화폭에 담는다.


 

찬란한 금빛풀이 만든 인간의 삶, 그리고 관계

검은 바탕 위에 홀연히 드러난 풀의 모습은 가까이 다가 갈수록 마치 신기루처럼 보인다.

멀리서 보면 풀들은 명확하게 어떠한 형상을 드러내고 있지만, 화폭에 가까이 갈수록 그 형상의 윤곽은 바탕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검은 색의 아래에서 언뜻언뜻 느껴지는 금빛과 형상의 곳곳에 새겨진 금색 선들이 합쳐진다. 그 위에 붉은 잎맥과 푸른 잎들이 뻗어가고 있다.

화폭의 풀들은 분명 이름이 있는 것들이다.

여뀌, 냉이, 민들레, 왕고들빼기, 질경이, 큰방가지똥, 강아지풀, 환삼덩굴... 비록 잎맥의 붉은 색이 과장되기도 하고, 벌레가 먹은 잎도 있지만, 화폭 속 풀들은 분명 현실에 존재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풀들에서 성민우는 생명을 느꼈고 그 생태를 관찰했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생명과 풀의 삶을 금빛 붓질로 한올한올 살려낸다.

 


그렇게 붉은 잎맥과 푸른 잎, 금빛 줄기들이 형언할 수 없는 에너지에 이끌려 형상을 만들어낸다.

폭포가 있는 신비한 풍경 속 덤불이었다가 하트모양이기도 하고 남녀의 형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사진의 한 장면을 이루다가 이내 다시 풀숲이 된다.

이러한 형상들은 작가가 오랫동안 작업을 하면서 개인사적인 굴곡과 인생에 대한 고민 등을 작품에 담으면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래서 시기마다 작품마다 형상을 이루는 풀과 함께 의미를 가진다.

그 의미는 그저 전체적인 형상으로만 설명되는 것도, 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풀만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성민우는 일견 풀숲이나 하트라 볼 수 있는 형상 속에 숨은 또 다른 형상을 넣어두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한 번의 바라봄으로는 파악할 수가 없다.

화폭 속 형상은 명확하게 드러나는 듯 하면서도 이내 사라지고, 못 찾을 듯 하면서도 빛에 따라 반짝임을 달리하는 금빛으로 다시 또 다른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호함, 이를 성민우는 인간관계와 같다고 생각한다.

풀무더기들이 그저 자신들의 생태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고 뭉치고 갈라지듯이, 인간관계 역시 너무나 사랑하여 하나가 된듯하지만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간극을 가지게 된다.

가족 역시 그러하다. 하나의 덩어리인 듯하지만, 제 각기 자신의 색을 가진 풀더미로 남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떤 풀은 꽃을 피우고, 또 다른 풀은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벌레에 먹히고 상처를 입는다.

이렇듯 알 수 없는 인간관계처럼,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지만 명확하게 알 수 풀의 생태를 성민우는 그린다.

그리고 이러한 풀의 형상은 인간관계의 은유이기도 하면서 작가 자신의 투영이기도 하다.



성민우를 이를 초상(草像)이라 이름 짓는다. 어떤 사람의 인물형상을 말하는 초상(肖像)이 아닌, 풀의 형상인 것이다.

‘초상’이라는 동음이의어에서도 그러하듯, 성민우가 그린 초상은 인간의 모습이면서도 풀의 모습이기도 하다.

풀잎과 줄기가 얽혀서 만들어내는 인간의 모습. 그 모습은 사랑을 하기도 하고 한없이 외로워하기도 한다. 하나이기도 하고 둘이기도 하다.

개인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하다. 마치 차가운 땅에서 자신의 힘만으로 싹을 틔운 풀이 우연히 만난 근방의 풀들과 어울려 살아가듯이 말이다.

이를 자연의 관점에서는 생태학(ecology)이고 인간의 관점에서는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성민우의 풀그림은 이 둘의 관점을 회화로 관통하고 있다. 지구상의 생명들이 그물망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이는 인간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근본 개념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를 성민우는 최근작품에서 오이코스(Oikos)로 풀어낸다.


풀더미들이 이룬 오이코스는 더 이상 우리 발밑의 풀들이 아니다.

우리가 밟을 수 있는 미물이 아니다. 오이코스를 이룬 풀더미는 오히려 우리를 집어 삼킬 듯 군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각자 자신의 위치를 갖는다. 화폭 속에서 저마다 앞으로 나오겠다며 아우성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어우러지고 있다.

오이코스는 생물학의 어원이 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공적 영역인 폴리스와 구분되는 사적인 집단을 일컫는 이 말은 인간에게는 생물학적 기본단위인 가족을 포함한 정서적 그룹이기도 하다.

풀더미를 인간관계의 반영으로 표현한 성민우은 바로 이러한 풀의 오이코스를 그려내고 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생명

 


풀과 인간, 이는 성민우의 작품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두 가지 코드이다.

이는 하나로 결합되기도 하고 또 따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마치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처럼 우리에게 오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이는 성민우가 첫 개인전에서 비단에 나뭇가지를 그렸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전통적인 기법으로 그린 나무가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른 나무가 그려진 반투명한 비단을 통해 사람이 보이길 바랐다. 성민우에게 있어 나무와 풀은 인간 그 자체였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생태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은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몸이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성민우는 우리 주위를 감싸는 반짝이는 생명을 보았다.

그리고 그 생명의 그물 속에 작가 자신이 속해있음을 표현한다. 무수한 금빛 점으로, 풀잎 끝의 금빛 선으로 그리고 금빛 풀벌레로 말이다.

언젠가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가벼운 반짝임, 움직임을 가진 것들이지만 이는 길가의 풀도, 인간도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성민우는 “풀과 벌레의 삶이 가볍다고 여겨진다면 ... 나의 삶이 풀과 벌레 같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한 마음으로‘비단에 금분으로 풀을 그리는 한국화가 성민우’의 작품에서 우리도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Plants Shining on Earth, and Life

Art Critic, HUR Nayoung

 

Plants

I want to gaze on their life

Understand their ways

Have compassion for them

And contain them

-from the Artist’s Note

 

Plants Growing in the Dark

Plants growing in the dark background deliver a strong force of life. Shapes and sceneries are created using plants. The contrast of the dark simplicity and intense complexity draws us closer to the canvas. What is this growing in the darkness? What is this place? We enter into an ambiguous place as we can closer to the canvas. The powerful red curves, and numerous lines of green and yellow tones convey the immense energy contained in the form found in the painting. However, this form is an illustration of plants. Plants that we encounter on the streets everyday.

Plants that grow between asphalt cracks and curbs; we often call them ‘weed.’ These weeds do not attract our attention in our daily lives. Maybe a dandelion holding its spores from time to time may stimulate our curiosity. These plants are neglected, but these plants sprout in darkness, opens their buds, grow stems and leaves. They grow only through the occasional raindrops and the warmth of the earth. And they disappear within a year. The natural growing strength of plants, they grow without the help of others. Artist SUNG Min Woo depicts the life of such plants on a black canvas.

 

Human Lives Created through Brilliant Golden Plants, and Relationships

The imagery of the sudden appearance of plants on the black canvas resembles a mirage, as you get closer. The plants take on clear forms and shape from a distance, but as you get closer, the contours of the shapes disappear into the background. Then, a glimpse of golden layers underneath the black background, as well as the golden outlines planted here and there come together, on top of which the reddish leaf veins and green leaves stretch out. The plants on the canvas have distinct names. Water pepper, shepherd’s purse, Indian lettuce, plantain, sonchus asper, foxtail, Japanese hop… the reddish leaf veins are somewhat exaggerated and there are leaves eaten by insects. Nonetheless, the plants seen on the canvas exist in reality, in the most humble places. Artist SUNG Min Woo felt life in these plants and observed its ecology. Then, she gave life to the vitality and lives of the plants with golden brush strokes.

 


In such a manner, the reddish leaf veins, green leaves, golden strokes come together to create shapes and forms driven by an unspeakable energy. The shapes and forms transform from a bush in the midst of a mystical scenery with a waterfall to a heart shape, and then to an image of a man and woman. Then, it forms an image of a family portrait, which then reverts to an image of a thicket. Such imagery was formed based on the artist’s personal struggles and hardships experienced through an extensive period of time. Thus, the plants that form various images bear different meanings depending on the time it was created. The meaning of each piece cannot be described or explained through the overall imagery itself, or the thicket that forms the images. Moreover, artist SUNG Min Woo embedded another image in the midst of what appears to be a grass thicket or a heart shaped thicket. It is why her work cannot be understood or interpreted through a quick glance. The shapes and forms on the canvas appear to illustrate a clear image, yet it faintly disappears. It appears to be ambiguous or vague, yet it forms another image according to the glimmering golden lines. SUNG Min Woo relates such ambiguity to human relationships.

Just as grass thickets come together and disperse according to its ecology, human relationships also appear to form unity based on love, but at the same time, it forms a gap between relationships that cannot be understood. This applies also to families. It appears to form a single organic body, but each member of a family bears a unique color. Some plants grow flowers, while other plants fail to defend themselves and are eaten by insects. SUNG Min Woo paints the unpredictable ecology of plants, similar to unpredictable human relationships, which seem to be interconnected while living independent lives. Also, such imagery of plants is a metaphor of human relationships, as well as a reflection of the artist herself.

SUNG Min Woo refers to this as ‘portraits of plants,’ not portraits of people. SUNG Min Woo’s portrait painting depict plants, but at the same time, they illustrate images of humans. An image of a person formed through leaves and leaf their veins. Such imagery conveys a sense of deep love, or unbearable loneliness at other times. It is one, yet two. It is an individual, yet a family. Just like a plant that grew on its own without the help of others from the cold earth to live among other plants in its surroundings. This could be referred to as ecology from an environmental perspective and social ecology from a human perspective. SUNG Min Woo’s plant portraits connect the two perspectives through dialogues based on the fundamental concept that all life forms on earth from a network, which also applies to human societies. SUNG Min Woo illustrates this idea through her recent work, ‘Oikos.’

The Oikos, which now forms a thicket, is no longer a plant that is stepped on everyday. It is no longer an insignificant life form. It now forms a thick swarm, as if threatening to engulf humanity. Yet, it each holds its position to maintain harmony. Oikos is also known as the root word of biology. It is also a word refers to an emotional group including the most basic biological unit known as family. SUNG Min Woo, who expressed human relationships in relation to plants, depicts an Oikos of plants.

 

Life Shining Golden

 


Plants and humans; these are two codes that repeatedly appear in the works of SUNG Min Woo. At times, they come together as on, while at others they separate. Also, like a beam of sunlight shining through tree branches, they reveal themselves and also disappear. This aspect is also true in SUNG Min Woo’s early works when she painted tree branches on silk for first solo exhibition. There was more than just a tree painted using traditional techniques. She hoped that the audience could see people through the semi-transparent silk with the painting of a tree. For SUNG Min Woo, trees and plants are synonymous with humans. We, too, vaguely understand what that means. It is why humanity is becoming more and more connected about environmental issues because humanity is experiencing physical effects of the fact that this world that we live in cannot be sustained based on human relationship alone. SUNG Min Woo discovered shining life that surround us. She expresses that she, herself, is a part of the network of life using illustrations of countless golden dots, golden lines outlining the edges of leaves, and golden insects. Faint glitters and movement that could disappear in an instant; it applies to plants, as well as humanity. SUNG Min Woo said, “If you think that the lives of plants and inserts are insignificant… I hope that my life could resemble the lives of plants and insects.” Through such a perspective, I hope that we, too, could look back on our lives through the works of ‘SUNG Min Woo, the Korean painter who paints plants with golden glitters on silk.’


풀의 그물망으로 엮어낸 관계의 에콜로지


- 성민우의 10년간의 ‘풀’ 연작에 대한 리뷰

황선형(모리스갤러리, 아트허브 대표)

 

풀의 작가로 잘 알려진 성민우는 2014년 ‘일년생’ 이란 책을 펴내면서 “「일년생」은 그 동안 풀과 함께 한 기록들을 모아 놓은 작은 도록이다.” 라고 서문에 밝히면서 “2005년 「풀의 초상」 전시에서 시작한 풀과의 인연이 이제 사람의 관계로 전이(轉移)되었다.”라고 적어 놓고 있다.

또한 2014년 ‘草像’ 전시의 작가노트에서 성민우는 풀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고개를 숙이고 우연히 걷던 어느 날, 유심히 바라보게 된 흔한 풀 하나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는 풀로 이야기를 대신해 왔다.” 고 밝히고, 그 이후 전개된 풀 작업의 경위에 대해 술회(述懷)하였다.

어찌 보면 2014년은 작가 성민우에게는 커다란 의미를 갖는 한 해로 기억될 만하다.

10년 동안 10여 회의 ‘풀’ 연작 전시를 통해 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풀어 내고, 그 기록들을 ‘일년생’ 이란 책으로 출판하는 큰 성과를 이루어 냈으니 말이다.

결국 ‘일년생’은 성민우가 가족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뿐만 아니라 작가로 성장하면서 겪어야만 했던 힘겨웠던 삶에 대한 진솔한 자서전(自敍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민우가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치열하게 고민하며 난산(難産)한 ‘풀’ 연작에 대한 의미를 전시별로 정리해 보면

① 풀의 초상(2005, 대학로 21C 갤러리) - 우연히 마주한 풀에 자신을 이입(移入)시켜 풀에 비춰지거나 연상되는 모습들을 묘사하고

② 흔한 풀(2007, 노암갤러리) -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풀이 갖고 있는 생명에 대한 본능을 금빛으로 예찬하고

③ 풀(2009, 목인갤러리) - 풀에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투영시켜 새로운 양식화를 시도하였으며

④ 가벼운 사랑(2010, 팝아트갤러리) - 죽음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⑤ 풀의 정원(2012, 화봉갤러리) - 온갖 생명들의 삶에 대한 열망들을 노래하고

⑥ 일년생(2012, 갤러리이즈, 모리스갤러리) - 고작 일년도 살지 못하는 풀의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연민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나무 위에 풀을 그리고 설치하면서 풀에 대한 의미에 되새기고

⑦ Portrait(2013, ablefineartNYgallery, 뉴욕) /

⑧ 초상(2014, 모리스갤러리) - 위선과 소외로 가득찬 불안정한 관계 맺기를 생태학(生態學)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으며

⑨ 관계의 생태(2014, ablefineartNYgallery, 서울) - 갖가지 풀들의 생명력이 사람의 형상과 핏줄로 전이되면서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인지하는 생태학적 작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우연히 발견된 풀에 자신을 이입시켜 묘사하기 시작한 풀 작업이 草像(초상)과 관계 맺기를 거쳐 생태학으로 변모(變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그간 10여 회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노트에 전시에 대한 의미와 작업의 본질에 대한 글을 적어 놓았다.

그 작가노트는 상당히 방대한 분량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개인적 심상과 맞물린 작업에 대한 생각들을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 중 핵심적인 부분들을 발췌해 짧은 글로 재구성 해보았다.

 

 


“풀처럼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에너지를 크게 발산시키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 그들은 내게 자신의 얼굴을 들이민 채 앉아 있었다. …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라고 풀과 조우하면서 받은 첫인상에 대해 말하면서 “흔한 풀, 그 생명체들의 생장에 대한 본능과 그 에너지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찰나에 보이는 금빛이다.” 라며 풀이 갖는 본질적 아름다움에 대해 예찬한다.

그리고는 “풀로 사람을 그려 나가면서 푸른 잎맥은 붉은 핏줄로 전이되고 풀의 짧은 생명과 죽음에 대한 연민은 사람에게로 대체된다.그림은 나에게 가장 적합한 연민의 방식이다.” 라며 언젠가는 어쩔 수 없는 맞이하는 죽음에 대해 연민하면서도 “살아가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죽음은 선택일 수 있지만 삶은 의무이기 때문이다. 삶의 모습은 들여다볼수록 치열하다. … 죽음 앞에서는 초월하고 숭고해지는 것이 사랑인데 일상의 지리함과 갈등 앞에서는 쉽게 고통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삶을 지탱하는 이들은 위대하다.” 라고 다시 삶에 대해 위무(慰撫)한다. “적막함이 깊어지면 하찮은 생명들의 소리가 세상을 채운다. 풀 잎사귀 하나하나의 핏빛소리 모두가 삶에 대한 열망이다.

생존과 번식에 대한 그들의 본능은 솔직하고 아름답다.


어두운 달빛과 바람 속에서 그 생명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풀들의 정원.” 은 아름답다고 고백하고, “고작 일년의 시간도 살아가지 못하는 그들에게서 나는 오늘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 일년은 하루 24시간. 365일의 시간이 아니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고 말라 죽기까지의 시간이다.” 라며 일년생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인간은 늘 누군가와 관계 맺기를 바란다. 사회라는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 구성원이 됨으로써 내적 평온함을 찾으려 한다. … 그러나 우리는 외로울 필요가 있다.

스스로 습관적인 관계 맺음으로부터 소외 되어야 한다.


관계 맺음으로부터 자발적 격리가 이루어진 경우라면 외로움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 외로움이 나를 해독시키면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등이 아닌 얼굴을 들이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계하고 통할 것이다.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라며 관계 맺음에 언급하고 “풀도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들의 운명은 어딘가에 뿌려진 씨앗으로부터 시작된다. 풀들의 생명은 그들의 선택이나 의도가 아닌 환경을 부여 받고 싹을 틔우면서 시작된다. 그들의 생태는 주어진 삶에 성실히 적응하면서 완성된다.” 고 관계 생태학적 접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성민우의 풀 작업은 의미론적 변화 못지 않게 표현상의 기법에 있어서도 몇 번의 변화를 겪어 왔다.

처음 풀 작업을 시작한 ‘풀의 초상’과 ‘흔한 풀’ 전시에서는 사실적으로 세부를 묘사하여 확대하거나 강렬한 색채로 형태를 표현하였으며, ‘풀’ 전시를 통해서는 검은 배경을 끌어들여 바짝 말라 버린 풀을 대비 시키거나 생로병사의 굴레 안에서 치러야 하는 결혼과 가족의 구성원으로써의 통과의례를 극명하게 표현하였으며, ‘가벼운 사랑’과 ‘풀의 정원’ 전시를 통해서는 사랑하고 있는 연인의 모습을 닮은 바위와 같은 무생물로 풀의 정원을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일년생’ 을 통해서는 나무 판에 풀을 커다랗게 그리고 오려낸 뒤 색을 입혀 설치 작업을 시도하고, ‘草像’ 전시 이후부터는 갖가지 풀들이 사람의 형상과 핏줄로 표현되고, 사람의 형상을 풀로 감싸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번 프랑스의 갤러리 bdmc(galerie Beaute du Matin Calme)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바로 이전의 ‘관계의 생태’ 전시에서 보여준 에콜로지(Ecology)에 대한 연속적 작업이면서 에콜로지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한 교두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풀을 매개로 식물과 사람, 사회적 구조까지 아우르는 성민우의 에콜로지 작업이 의미론적으로는 이미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해외라는 물리적, 장소적 제약으로 제한된 작품으로 전시를 구성할 수 밖에 없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인지하는’ 에콜로지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성민우는 그간 10년간의 긴 시간 동안 풀 작업에 천착(穿鑿)하면서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의 미학’ 이라는 평가를 받는 커다란 성취를 이루었다.

그 성취는 지난(至難)한 작업의 시간을 관통하면서 쌓은 내공과 강인한 성격, 그리고 긍정적 사고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필자는 그 동안 그녀를 볼 때 마다 외유내강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심지(心志)있는 작가라는 인상을 자주 받곤 했다.

꿋꿋함과 지구력 그리고 순발력까지 갖추었으니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 동안 달려온 10년간의 ‘풀’ 연작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고 있다.

이번 프랑스 전시 이후 더 심화될 ‘에콜로지’의 작업은 물론이고 또 그 이후의 작업들도 어떻게 전개될지 자못 궁금하다.

앞으로 만개할 성민우의 작품세계와 좋은 작가로 성장할 성민우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는 일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Ecology of Relationships Created with a Matrix of Grass

- A Review on Serial Work The Grass of 10 Years by Sung, Min Woo

 

  Sunhyung Hwang(CEO of Morris Gallery & ARTHUB)

 

Sung, Min Woo, known as an artist of grass, mentioned on preface of her book Annual Plant, “Annual Plant is a small document about what I have experienced with my motif, grass.” Also, she stated that her primary concern has gone through a transition from grass to human being since 2005 Portrait. In her statement of The 2014 The Image of Grass exhibition, she explained how she initiated to take her motif from it, “ One day I was walking with my head bended along the road, I came across and stared at ordinary grass and then tried drawing a single grass, which was the beginning of telling my artistic narrative through it. To her, the year 2014 is probably meaningful and it has good reason to be remembered in that she has represented a wide variety of thoughts and emotions through 10 exhibitions for 10 years with the serial work The Grass. What is more, her book Annual Plant that was published that year was outstanding achievement. The book can probably be a sort of autobiography since she described her life of hardship not only as a family member, a member of society but also as an artist undergone trials while growing up to be an artist. 

 

Here are a list of her exhibitions to have filled the stage with grass painting constantly created struggling against herself. On Herbage Portrait (2005, 21c Gallery, Seoul), she depicted multiple images reflected on it and those we can associate with it. Paintings on Herbage Met with Everywhere (2007, Noam Gallery) highly admired the instinct for its life force that can be seen everywhere. Herbage (2007, Mokin Gallery) had a characteristic of attempting new artistic style by reflecting her individual experience pertaining to grass. The exhibition The Love of Life Lightly (2010, Pop Art Gallery) offered encouragement to viewers living in tough circumstances. The works of The Grass Garden (2012, Hwabong Gallery) mainly featured the longing for existence of all living things. On Annual plant(2012, Morris Gallery, Gallery Is), woods was carved into the shape of grass and installed in  space, with feelings of pity for its destine to live and can’t avoid death for just only one year. Portrait ( 2013, ablefineartNYgallery, New York) was mounted in New York. On Portrait (2014, Morris Gallery), she represented the precarious relationships full of hypocrisy and isolation with perspective of ecological dimension. Ecology of Relations (2014, ablefineartNYgallery, Seoul) developed her painting based on such viewpoint that nature and human being become one, which she considered as her main idea, depicting the life force of a variety of grass which turned into human being’s image and one’s blood vessels. Consequently, her painting based on this perception has driven her to evolve her idea and to build relationships between them, altering her art that is filled with the point of view, and her painting was dominated by it. While preparing 10 exhibitions, she has written down her idea on its definition and its nature.  Here are some of her statements that is extracted from her statement.

 

“Are there living things that give off their energy in a short time like grass?... They were sitting facing me... They were living their lives calmly”, said the artist. It probably was the first feeling or impression when observing the grass. She highly admired its essential beauty, saying “Their life force stemming from their instinct of growth and their energy made me feel beautiful. I captured the true beauty at that very moment.” “Their green veins changed into one’s red blood vessels and the compassion caused by their short life and death produced empathy towards human being. In this respect, painting is the best way to express sympathy to me.” “Living is great. That’s because death can be a matter of choice, but life is duty.”... “When observing living things, I found them struggling with themselves fiercely. Love feels like something sublime and remains aloof before death, but it changed into pain in front of boredom of daily lives and conflicts. That’s why human beings who manage to sustain their lives deserve to be highly esteemed“. The artist gave comfort to one’s life struggling against a painful condition. “Deep silence makes the world filled with sounds out of trivial living things. Sound from each grass conveys its desire for life. Its instinct towards existence and reproduction feels explicit and beautiful. Its sounds can be heard from dark moonlight and the wind. Those who are living less than one year teach me how I should live. One year never means just simple number of 24 hours / 365 days. Its focus lies in time from budding, bearing fruit to withering”. She mentioned a philosophy of life that she learned from the annual plants. “One always desires to build relationships with others and pursues inner tranquillity by becoming a member of society. However, one sometimes does need to be lonely and also needs to completely isolate oneself from the relations so that voluntary loneliness can create new meaning and feelings beyond what we have thought so far. Loneliness helps face each other with our heart open, allowing us to communicate with others.” ... “Grass is also living in relationships, starting its destiny from seed somewhere, beginning life in a circumstance which is neither choice nor intention and it finally completes life when grass is able to adopt a given condition.” said the artist.

 


 

 

In terms of technique, she has changed it a few times along with aspects of its concept. On Herbage Portrait and Herbage Met with Everywhere, her paintings were realistically portrayed and enlarged with intense color. Through Grass, obvious contrast was expressed with fully dried ones by employing gloomy background, and she obviously represented rite of passage of human being living under the four phases of life the birth, or old age, sickness, and death such as a marriage life and life as a member of family. Through The Love of Life Lightly and The Grass Garden, non-living things such as rocks which look like loving couple were employed to create the garden. On Annual Plant, grass objects cut out of wood panel were installed with colors applied on them. Since Portrait, a rich variety of grass has formed one’s bodies wrapped by it.

 

On this exhibition at bdmc (galerie Beaute du Matin Calme), she is going to display paintings based on Ecology concept shown from Ecology of Relationships and they are expected to serve as a momentum to place priority to Ecology painting. With grass, she dealt with human, plant and society, which signifies that her paintings are put emphasis on aspects of meaning. Despite its physical and spatial limit from overseas exhibition, I’m quite sure that philosophical perspective of identifying nature with human can be well delivered. Over a period of 10 years she has been obsessed with grass painting and has gained the judgement of ‘aesthetic of empathy’. This achievement probably came from some elements; her spiritual power, strong personality, and affirmative thinking. She sometimes gave me an impression of being gentle in appearance, but sturdy in spirit. It is natural that I have been favorably impressed by her due to her determined mind, endurance and agility, too. Dedicating herself to grass painting for 10 years, her serial work The Grass is about to take a next step towards her new world. I wonder how far and deeply her ecology painting will evolve after this exhibition in France. She is expected to eventually blossom out into an influential artist and I look forward to meeting her future world proceeding towards full bloom.




성민우의 풀의 노래 : 생명의 그물망과 생태사회학


김준기(미술평론가)

 

성민우는 풀을 빗대어 사람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풀로 그린 사람의 모습, 즉 초상(草像)이며, 풀의 생명가치로부터 인간의 삶의 이치를 찾아내는 다중적 의미지층을 가지고 있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낯선 이름의 풀들을 화려한 금분과 채색으로 그려낸다.

여뀌, 씀바귀, 환삼덩굴, 큰방가지똥, 겨울달맞이, 겨울여뀌, 이른냉이, 냉이, 민들레와 지칭갱이, 질경이, 망초, 여름여뀌, 고들빼기와 며느리밑씻개, 가시상치와 며느리밑씻개, 달맞이와 환삼덩굴, 며느리배꼽 등 그가 호명하는 풀들의 이름은 그 자체로 깨알 같은 서사를 가지고 있다.

화단에 심어 기르는 화초와 달리 그가 불러 세운 풀들은 잡초로 분류하는 것들이지만, 그는 풀로 엮은 인물화 연작을 ‘초상’이라 이름 짓고 그 뒤에 이런저런 잡초들의 이름을 붙여서 각각의 그림에 뜻을 더한다.


 

성민우 풀그림의 단초는 생명의 존재에 대한 질문과 해답에 있다.

그가 덜 알려진 풀들을 호출한 이유는 그 자신이 명명한 ‘외로움과 관계맺음의 초상’에 다가서기 위함이다.

그가 불러낸 풀들은 생명의 존재론을 표상한다.

성민우의 예술 속에는 우주와 생명의 노래가 담겨있다는 점을 유념해서 보아야 한다.

인간 존재는 누군가와 관계맺고 소통하기를 원하지만 필연적으로 그 소통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고 고독에 빠진다.

성민우는 이 대목에서 존재론적 고독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 ‘스스로 외로움과 관계맺기’를 권면한다.

그가 그린 풀의 초상은 존재론적 고독을 읊조리는 애달픈 노래가 아니라 그것의 초극을 위한 역설의 감성학이다.

그의 노래가 마른 풀의 애잔한 고독을 품고 있을 때에조차 그 속에 절대로 고독에 빠질 수 없는 우주와 생명의 깊은 이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봄여름을 지나고 가을을 맞아 생명현상을 멈춘 마른 풀을 그렸다.

2009년 무렵의 연작들 가운데 하나인 ‘그녀를 위한 부케’는 순결함이나 화려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화훼농장 출신의 부케와는 달리 마른 잡초로 꾸민 낯선 모습이다.

누군가의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나름의 생명의 이치를 가지고 한 생을 살아낸 고귀한 존재를 호명하는 성민우의 시선은 생명에 대한 낮은 목소리의 사랑 노래다. 어디에 핀들 꽃이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생명의 서사를 엮어내는 알레고리로 부처와 나한과 보살의 도상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결혼사진이며, 가족사진을 풀그림에 대입하기도 했다.

그는 인간 형상 안팎에 얼기설기 엮인 마른 풀의 노래가 인연(因緣)과 인과(因果)를 함께 녹여 우주와 생명을 사유하는 성찰의 세계관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른 풀의 생명예찬을 넘어 인간 삶을 다루고 있는 근작의 씨앗이 담겨있는 작품들이다.

 

 

구작 풀그림에서는 식물의 줄기를 기본적인 구조체로만 묘사한 것에 비해, 신작 풀그림에서는 그 줄기를 좀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신작들에서 나타나는 줄기 선은 시각적인 역동성을 확보하면서 생명의 네트워크를 가시화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줄기의 존재를 부각함으로써 성민우가 획득한 것은 낱개의 잎새가 아닌 순환의 고리로서의 풀을 통하여 네트워크로서의 생명현상을 표항하는 성찰적 사유이다.

그의 근작 풀그림 전반에 걸쳐 도드라져 보이는 줄기 선의 변주는 그의 그림에 폭넓은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줄기 선의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한 펼침으로 인해 그의 풀그림인물화는 환영에서 상징으로 진화한다.

다시 말해서 그의 풀그림은 풀의 형상을 얽어서 인물을 형상화하는 ‘환영의 회화’이면서 동시에 풀의 생명네트워크를 인체 내부의 생명의 고리와 더불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네트워크로 확산하려는 ‘싱징의 예술’로 해석의 지평을 확산한다.

 

 


성민우의 풀그림이 한층 더 넓은 비평적 의미를 갖는 대목은 그것이 풀의 형상을 통하여 생명의 그물망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풀잎이나 꽃의 존재만이 아니라 줄기를 타고 흐르는 생명의 그물망을 펼쳐 보인다. 근작들에서 보이는 남녀 초상은 격렬하게 키스하는 연인이나 홀로선 남녀의 모습이다.

그것은 구작에서 나타나는 인물상들과 외형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물들을 구성하는 풀의 줄기가 마치 인체의 혈관이나 신경망을 보는 듯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신작에서 나타나는 줄기 선의 그물망 구조는 생명현상을 일종의 네트워크로 설명하는 과학적 시각과도 만난다. 온몸 구석구석까지 연결된 뉴런의 세계는 생명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표상한다.

성민우의 근작에서 온몸을 타고 흐르는 그물망의 선들은 격렬하게 꿈틀거리며 화면에 율동감을 부여하는 조형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식물과 인간 개체, 나아가 사회의 구조를 관통하는 네트워크의 세계를 보여준다.


나아가 성민우의 풀그림은 생태사회학적 관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그림은 풀의 생태학에서 나타나는 생명현상의 보편적인 순리를 인간의 신체와 인간의 사회학으로까지 확장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풀의 노래를 인간사회의 그물망으로 연결하려는 그의 모색은 언필칭 식물성의 사유다.

그가 줄기 선을 역동적인 변주의 세계로 변용한 것은 그의 그림을 형상 중심의 환영으로부터 역동적인 은유와 상징의 세계로 진일보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그것은 풀그림의 생태학을 관계의 사회학으로의 확장하게 해주는 결정적 요소이기도 하다. 특히 그가 말하는 ‘외로움과 관계맺기’라는 언설을 이중적인 역설의 상황에 놓이게 한다는 점에서도 줄기 선의 비중은 매우 크다.

자칫 인물의 내면을 채우는 풀잎의 동어반복에 빠질 수도 있는 풀그림에 꿈틀거리는 선들로 자극의 요소를 가미하고 나아가 그것을 자연생태와 인간사회의 네트워크로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민우의 풀그림에는 작은 것의 위대함과 일상의 거룩함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적 사유가 담겨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생명의 가치를 돌아본다.

그것은 생명의 네트워크를 생태사회학으로 확산하려는 우주와 생명의 노래이다. 무릇 생명은 낱개의 것으로 태어나 스스로 사라지는 개별의 존재이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개별자 모두는 태어나고 성장하여 소멸하는 것이 저 혼자의 일인 듯 부질없고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생명도 스스로 존재하거나 생명의 순환고리 바깥에 존재할 수는 없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대자연 속에서 단 한 해를 살다 가는 풀 한포기조차도 그 자신만이 홀로 존재할 수는 없으며 그 속에는 우주와의 관개맺음이 담겨있다.

풀은 가까운 곳 땅과 관계맺음으로 인해 뿌리를 내리고 존재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으며, 저 멀리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별로부터 에너지를 내려 받음으로써 생명현상을 지속할 수 있다.

풀 한 포기가 자라나고 꽃 한 송이가 피어날 때도 온 우주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먼지 한 톨, 꽃 한 송이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고 하지 않는가!